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발터 모델 (문단 편집) ===== 비판 ===== 국방군의 [[홀로코스트]] 및 학살 참여에 대하여 연구가 진행된 현대의 시각은 들소 작전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이에 따르면 들소 작전은 실제로는 수많은 민간인 피해를 양산한 작전이었다. 모델과 9군은 탈출을 위한 퇴각로 정리 과정에서 약 3,000명 가량의 '[[파르티잔]]'들을 사살했는데, 막상 수거한 무기는 277정의 소총과 41정의 권총, 61정의 기관총 등 극히 소수였다. 이는 사살된 '파르티잔'들 중 절대 다수가 실제로는 비무장한 민간인이었음을 의미한다. 1990년대에 '국방군 범죄 전시회'를 주최했던 독일 사학자 [[https://de.wikipedia.org/wiki/Hannes_Heer|한네스 헤어(Hannes Heer)]]는 당시 동부전선과 발칸 반도 등지에서 남발된 이런 빨치산 토벌전을 빙자한 학살들에 대해 >'''"파르티잔이 없는 파르티잔 소탕전(Partisanenkampf ohne Partisanen)이라는 기이한 상황"''' 이라고 말했다. 또한 모델은 퇴각 과정에서 일대의 모든 남성들을 강제이주시키고 남겨진 마을들에는 방화를 지시했다. 냉전 시기 독일 측은 이에 대해서 소련 공군이 자국 민간인들에게도 폭격을 감행하는 일이 발생했으므로 피난민들이 소련군과 [[NKVD]] 위원들로부터 자기들을 지켜 달라며 독일군에 요청했다고 주장했으나 현대의 연구는 조금 다르다. 상기한 주장은 나치 독일군의 장성들이 전후 회고록에 쓴 일방적인 주장을, [[국방군 무오설]]에 물들었던 서구 학계와 독일 사회가 그대로 받아들였던 결과물이다. 실제로 들소 작전 당시 발터 모델의 강요로 철수 행렬에 올랐던 민간인들의 숫자는 독일 측이 주장하는 60,000명이 아니라 그 두 배인 약 130,000명이었다. 이는 일대의 주민들 중 약 41%에 해당하는 매우 높은 수치였으며, 사실상 강제 소개였다. 이 모든 과정들은 민간인의 피해를 고려하지 않는 전형적인 나치 독일식 '''반덴베켐풍'''(Bandenbekämpfung), 즉 파르티잔 토벌전이었다. 들소 작전 역시 1941년부터 1944년까지 벨라루스 일대에서 국방군 및 친위대에 의해 수도 없이 벌어졌던 대학살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https://blog.naver.com/sk7635/222524497782|#]]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